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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청암로】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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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칼럼 |
3년 전, 첫 카페 아르바이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돼 삶의 질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빨대 없이 꿀꺽꿀꺽 마셔야 제맛’이란 것이다. 프랜차이즈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에스프리 리드(Straw-free-lid)’, 즉 빨대 없이 사용 가능한 아이스 컵 뚜껑을 처음 접했고, 이 뚜껑은 당시 21살 인생에 새로운 개안을 불러왔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의 카페는 책 한 권, 커피 한 모금의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 아닌, 칙칙폭폭 쉴 틈 없는 커피 공장으로 가동된다. 정신없이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다 생명수 마시듯 에스프리 리드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꺽꿀꺽 마셨을 때 ‘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제맛이다’하고 깨달았다.
당시 코로나19로 모든 매장에서 일회용 컵이 제공됐는데 그 안에서 불필요한 일회용품을 줄이고자 되도록 빨대를 제공하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이미 빨대 없이 마시는 커피의 제맛을 깨달았기에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일부 빨대를 찾는 손님이 계실 때면 지침서대로 ‘빨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에스프리 리드로 제공됐습니다’ 안내하면서 동시에 속으로 ‘제발 내 말을 한 번 믿고 빨대 없이 드셔보세요’ 외치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왜 이렇게 커피를 꿀꺽꿀꺽 마셔보라며 장황하게 권유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당시 기자는 주 5일 첫 아르바이트를 출퇴근하며 20대 인생 첫 쓴맛을 느끼는 중이었고, 어차피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면 붙잡을 구석이 하나라도 필요했다. 그래서 퇴근하고 나면 일기장에 어떤 순간이 그날을 숨 쉬게 했는지 빼곡하게 기록했다. 그게 바로 바쁘게 일하는 중간에 벌컥벌컥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힘든 기억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의 기록을 보니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꾸준히 일한 덕분에 경력이 쌓여 비슷한 계열 알바 면접은 프리패스가 됐고, 같이 일했던 분들과 여전히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일머리가 상승해 능수능란한 알바몬이 됐기보다,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것을 하나씩 만들어 두고 숨 막히는 순간에 꺼내쓸 수 있도록 대비하는 요령이 생긴 정도다. 여전히 새로운 시작엔 허술하고, 자빠져서 당황하곤 한다.
첫 아르바이트 또한 그랬다. 유독 책임의 무게가 크게 느껴지고, 해결하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어떤 책임인지 하나하나 꺼내어 놓고 보면, 생각보다 아닌 경우도 있었을테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낯설고 어려우니 적응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거쳐야 하는 단계라면, 매번 피하기만 할 순 없다.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할 정도가 되려면 매일 부단히 배우고 노력한 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시작은 ‘양날의 검’ 같다. ‘처음’은 모든 걸 들뜨게 하고 무엇도 두렵지 않게 만들어 맥락 없이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는 건 그 시작으로 인해 겪게 될 실패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피라이터 이원홍은 일의 경험이라는 ‘사실’이 아닌, 복기를 통한 ‘해석’이 성장을 만든다고 말한다. 지나간 일에서 무엇을 견지하고, 무엇을 반성하며 어떤 점을 극복할 문제로 보고 나를 바꿔나가느냐에 따라 앞으로 주어질 일에 대한 대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나를 ‘완료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불이과(不貳過)’의 인간을 향해 끝없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더 나은 사람으로 자신을 진전시켜 가라는 의미다. 이러한 믿음과 책임감이 일의 지속성을 만들어 가는 길 같다.
대학을 다니며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을 찾아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나름 성공적이라 한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뚜렷한 진로를 찾는 건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원하는 전공 공부, 꿈꾸던 대학 생활을 실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정말 행운이다. 다만, 그 행운을 게을리 넘기지 않길 바란다. 닥쳐오는 일은 대개 쉬워지는 법은 없고 더욱 강해지길 요구한다. 피곤하더라도 계속 고개를 드는 순간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리 머지않아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면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는 수밖에 없으니, 숨이 턱 막히는 순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꺽꿀꺽 마셔보면 어떨까. 새로운 시작을 도전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처음의 시간을 잘 견뎌내길. 우리 모두의 존재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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