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신문

전체기사

  • 청대신문
  • 전체기사
전체기사 상세보기, 제목, 카테고리, 내용, 파일등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제목 【와우촌감】 인문학의 쓸모에 대하여
카테고리 칼럼
 
 몇 년 전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하나 등장했다. 그것은 시민 사회에서 인문학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대학 내에서는 소위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 관련 전공이 고사(枯死) 직전에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문송합니다!’라는 웃지 못할 말이 유행한 지도 꽤나 지났다.
 
 인문학은 왜 해야만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인간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 자명한 진리 앞에서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대학생이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인문학의 쓸모’라는 주제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인문’이라는 어휘에 대해 명확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인문’은 한자로 쓰면 ‘人文’이 되는데 문자 자체의 뜻에 충실하면 ‘인간의 무늬’에 해당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인문학은 ‘문학’·‘역사’·‘철학’을 지칭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는 하늘을 바라보며 ‘천문天文’, 즉 ‘하늘의 무늬’에 대한 신비로움과 규칙을 하나둘씩 밝혀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천문학’은 인류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진출하기 위한 과학 분야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학문이 됐다. 다음으로 ‘지리地理’, 즉 ‘물줄기와 땅줄기의 무늬’를 따라서 인류는 정착지를 만들고, 이곳저곳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지리학’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영토 확장과 전쟁 등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러면 ‘인간의 무늬’에 해당하는 ‘인문학’은 인류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인간人間’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관계’가 중요하다. 인류의 조상이 ‘문명文明’의 등불을 밝힌 이래로 인간관계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이었다. 그래서 고대의 성인 가운데 예수는 ‘사랑’을, 석가는 ‘자비慈悲’를,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선생님과 학생 간의 사랑, 이웃과의 사랑 등 인류는 사랑을 매개로 생명의 씨앗을 이어나간 것이다. 인문학이 강조하는 ‘사랑’이라는 쓸모는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 목표가 되며, 만약 사랑이 없다면 인류는 쉽게 불행해지고 급기야 멸망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랑’도 공부를 해야만 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문학 작품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근원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황순원의 수필 「소나기」와 연탄재로 유명한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가슴 절절하게 읽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정도 연애도 결혼도 ‘사랑’을 매개로 이뤄진다. 그러니 ‘사랑’을 최고의 덕목에 두는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관계에서의 행복을 찾는 데는 서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문학의 가장 큰 쓸모이다. 
 
 둘째, 위에서 말한 문학과 예술 외에도 인문학에서는 ‘역사 공부’를 중요시한다. 역사의 쓸모는 바로 한 사회나 개인에게 역사 공부를 통해서 과거를 알고 현재에 당면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게 해주며, 더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힘을 길러 준다. 다시 말해 역사 공부는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보다 나은 길을 제시해주는 쓸모가 있는 것이다.
 
 셋째, 인문학에서는 ‘철학’을 모든 학문의 왕으로 꼽는다. 철학은 인간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학문이다. 운동을 통해 육체의 힘을 기르듯이 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생각과 정신의 힘을 기를 수 있다. 철학을 통해 생각하지 않고 살게 되면 그냥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상 ‘인문학의 쓸모’에 대해서 핵심적인 부분을 살펴봤다. 인문학은 인간의 물적 토대가 되는 경제학과 더불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평생을 통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다. 큰 배움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소위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을 소외하면 그 대학은 진짜 좋은 대학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선언으로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시찬<인문학부> 교수
 
파일

담당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