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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와우촌감】 다시 만난 세계
카테고리 칼럼
 
 봄이다. 아직은 가끔 쌀쌀하기도 하지만, 곳곳에 꽃이 피고 새잎이 돋아나며 자연은 봄날에 대한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에는 때론 기대란 것이 부질없단 생각이 든다. 이전보다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했던 올해 봄날에 다시 과거로 뒷걸음질하도록 밀쳐진 느낌은 참담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의 선택 때문에 앞으로 견뎌야 하게 된 시간의 무게와 깊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요즘 다시 한번 ‘다시 만난 세계’란 노래를 떠올리게 되었다. 5년 전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당시 이화여대 학생들이 불렀던 노래이다. 군부독재의 군홧발에 짓밟혔던 오랜 시간 동안 ‘전두환은 물러가라 훌라훌라...’ 같은 투쟁가를 부르며 덤볐던 세대에게 그처럼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로써 저항하던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 목소리는 여렸지만 함께 어우러졌을 때 이전 시대의 그 어떤 외침보다도 힘찼고, 구호는 당찼다. 정권에 부역했던 당시 이화여대 총장의 요구로 교정에 투입되었던 경찰조차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던 모습은 지금 보아도 울컥하게 만든다. 사실은 너무나도 무서워서 밝은 희망을 그리는 노래를 불렀다던 그 학생들의 고백은 아직도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보다 앞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이름 모를 젊은이들이 투신하고 분신하고 거리에 나서고, 감옥에 갇히면서 싸워 얻어낸 민주주의가 어떤 순간 다시 친일과 군사독재의 망령이 가득한 과거로 회귀하였고, 그렇게 무너진 정의는 다시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아픔을 준 것이다. 이들로 시작된 촛불혁명은 부패한 독재자들의 후예를 어렵사리 다시 끌어내렸지만, 이 봄에 이 나라는 마치 도돌이표처럼 그 집요하고 강고한 세력이 지배하던 과거로, 그 자리로 또다시 돌아가고 있다. 

 봄날에 찬 바다에 가라앉은 아이들을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슬픔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무도하고 오만한 독재 세력의 잔당이 지배하는 과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더 밝고 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길을 아주 잃어버린 것인가? 이처럼 질긴 역사적 퇴행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런데 요즘 다시 젊은이들이 앞장서 촛불을 들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리 세대가 애를 쓰긴 했으나 다 이루지 못한 것을 그들이 넘겨받은 모양새다. 고마울 따름이다. 이들이 주인으로 다시 만나는 세계에선 큰 슬픔이나 아픔이 없으면 좋겠다. 이들이 매일 한발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고, 조금씩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는 희망이란 걸 잃지 않는 그런 세계를 다시 만나면 정말 좋겠다.
 
윤정옥<문헌정보학전공>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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