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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와우촌감】 여름은 가고
카테고리 칼럼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원격강의를 준비한다고 동분서주하던 일 학기 동안의 당혹스러움이 이제 좀 가라앉나 싶은데, 어느새 새 학기를 맞게 되었다. 매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얼굴들과 익숙한 얼굴들을 함께 만나며 그래도 이전 학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 가르치도록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지난 학기, 비대면 원격강의라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기술을 익히는 것에 급급하였을 뿐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요구에 대학이 부응해야 하고, 모두들 불편을 감수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학생들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어서 이 상황이 지나가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 모두들 반가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요즘처럼 처음 맞닥뜨리는 세계적 혼란 상황에서 그동안 억지로 숨겨왔던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국가적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어려움 혹은 불편함을 빌미로 마치 이전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때는 모두가 완벽했던 것처럼 다시 오래전 어떤 시간으로 돌아가려는 아주 끈질긴 힘을 만나게 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공유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자고 애를 쓰고 있는 지금에 다시 피부색으로 계급을 나누고, 국적으로 차별하려는 시도가 드러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학기 교양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으려고 했던 미국작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을 보면, 남북전쟁이 끝난 지 오래인 20세기 초반임에도 아직도 뿌리 깊은 미국의 흑인 탄압과 차별에 따른 아픔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인간 존엄을 지키고 평등한 인권의 기본을 회복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노력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나마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게 된다. 그 작품이 나왔던 1960년대에 자유를 향해 그리고 흑인의 인권을 위해 함께 어깨 걸고 행진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깨어났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2020년 오늘에도 검거나 희거나 누렇거나 한 겉모습에 따라 편을 가르고 밀쳐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직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가? 어떤 사람들이 그러고 싶어 한다고 세상이 그렇게 되돌아간다면, 우리에게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는 기대가 생길 수 있겠는가?

지금처럼 눈에 볼 수도 없는 그렇게도 작고 낯선 바이러스란 것이 이토록 덩치 큰 사람이란 존재를 뒤흔드는 이 순간, 그것을 핑계로 혼란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 순간, 문득 김수영 시인의 말을 빌어 묻고 싶어진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며’에서 인용) 우리는 정말 그렇게도 작아서 오래된 차별의 뿌리를 캐내지도 못하는 존재인가? 어떤 사람들이 원하는 과거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면, 절대 돌아가서는 안 된다면, 우리가 먼지만큼, 티끌만큼 작더라도 뭉치고 뭉치고 또 뭉쳐서 언젠가는 그릇된 힘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도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계속해서 애써온 작고 작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윤정옥<문헌정보학전공>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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